하루를 꽉 채워 일하고 퇴근하는 길, 유독 지친 몸을 이끌고 익숙한 골목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낡은 가로등 불빛이 깜빡이는 가운데, 저 멀리 희미한 실루엣이 걸어가고 있었죠. 60보쯤 되었을까요?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 멀리 걷던 여인이 갑자기 뒤를 돌아봅니다. 어색한 마음에 속도를 늦추며 갈 길을 가려는데, 갑자기 뒤통수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눈을 떴을 땐 낯선 병실, 손목에는 차가운 수갑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당황스러운 와중에 경찰관과 함께 있는 여성분을 마주했습니다. 정신이 드니 경찰관이 다가와 왜 여성을 따라갔는지 묻더군요. 얼떨결에 제 집이 그쪽 방향이라고, 함께 걷던 길이라 설명하려 했지만 이미 상황은 꼬여버렸습니다. 주머니를 뒤져 겨우 집 주소를 확인하고, 함께 있던 여성분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이마의 통증은 가시질 않았습니다.
간신히 오해가 풀리고 수갑이 풀렸을 때, 그 여성분은 제 옆에 서서 미안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김희은 씨라는 분이었는데, 저와 같은 길을 한 달 동안이나 매일 다녔다고 하더군요.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걷다 보니 오해할 만도 했습니다. 집 가는 길인데, 항상 그 시간에 그쪽으로 가신다고 하니… 정말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통증이 가시자 병원비를 정산하려 원무과로 향했는데, 희은 씨가 이미 제 치료비를 대신 내주고 있었습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함께 병원을 나서는데, 택시를 잡는 희은 씨가 제게 타라고 권했습니다. 피곤함에 몸을 실으니, 희은 씨는 목적지를 말하고는 출발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은 분식집 앞. 함께 내리자 희은 씨는 환하게 웃으며 “한잔할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어색했지만, 왠지 모를 끌림에 따라 들어섰습니다. 소주와 안주를 시켜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젯밤의 오해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습니다. 회사를 다닌다고 하니, 이곳 동네에 비해 제 집이 좀 작다고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회사와 가까워서 지하에 산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희은 씨는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갔습니다. 헤어질 시간이 되어 각자의 집으로 향했고, 저는 곧바로 얼음주머니를 찾아 이마에 대고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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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찾아온 예상치 못한 하루
다음 날, 알람 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출근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시간이 촉박해 도로까지 뛰기 시작하는데, 웬걸. 슈퍼 앞에서 학생들이 도망치기 시작하더니, 저까지 쫓아오는 주인에게 잡혔습니다. “도둑이야!”라는 외침에 황당했지만, 왜 도망치냐는 질문에 차 시간 때문에 그랬다고 겨우 설명하고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간신히 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하니,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 오늘은 좀 일찍 나섰습니다. 여름 더위를 피해 가로수 그늘 아래를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쿵쾅쿵쾅” 소리가 들리더니 깡패들이 싸우는 듯했습니다. 순식간에 상황은 저에게로 번졌고, 몽둥이에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깨어나 보니 또다시 병원. 오늘따라 왜 이렇게 되는 일마다 꼬이는 걸까요. 멍하니 있는데, 밤늦게 희은 씨가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또 왜 이렇게 됐어요?”라는 질문에 저도 모르게 “글쎄요…”라고 답하자, 희은 씨는 가볍게 웃었습니다. 몸을 추스르고 경찰에게 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후, 희은 씨와 함께 병원을 나왔습니다. 어떻게 왔냐는 제 질문에 전화해보니 병원이라고 해서 왔다며 말을 얼버무리는 희은 씨.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도착해 주소를 알려주니, 희은 씨는 제 지하실 단칸방까지 부축해 주었습니다. “매일 이렇게 다쳐요?”라는 물음에 “일이 자주 꼬여요”라고 답하자, 희은 씨는 또 한 번 웃었습니다. 무엇을 하며 지내냐는 질문에 “그냥 주식 모아요”라고 답하자, 희은 씨는 곧바로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 굽기 시작했습니다. 미안해서 채소를 씻고 상차리기를 도왔습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함께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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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제안, 그리고 새로운 시작
다음 휴일,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습니다. 어제 모아둔 주식을 확인하는데, 그래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라면을 끓여놓고 컴퓨터 화면을 보며 마우스를 누르다 보니, 어느새 계좌 잔액이 꽤 불어나 있었습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화려하게 꾸민 희은 씨였습니다. 라면 냄새를 맡고 찾아왔다며, 접시와 젓가락을 들고 와 함께 먹자고 했습니다. 함께 라면을 먹으며 주식을 이야기하는데, 희은 씨가 제게 “나도 주식 해볼까 하는데, 얼마나 해야 할까?”라고 묻더군요. 10억이라는 말에 놀라자, 희은 씨는 집이 좀 살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다 먹고 치우고 나서, 희은 씨는 따뜻한 커피를 내어주며 말했습니다. “오르면 반띵 하자.” 저는 당연히 좋다고 답했고, 희은 씨는 보조개가 깊이 패이도록 환하게 웃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이었지만, 그 끝에서 만난 희은 씨 덕분에 하루하루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을 계기로 좀 더 희망찬 내일을 기대해 봅니다.